[직장인들이여 회계하라-54]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헬스케어, 덴티움 등 바이오기업들이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어떤 숫자가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생기면서 금융감독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감리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각각의 사건에 대해 논란이 되는 이유와 회사 측 해명 등은 이미 언론에 알려졌으므로 여기서는 이러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숫자로 얘기하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수출이 많이 늘었다'고 할 때보다 '1분기 매출이 1392억원으로 전년 대비 12.92% 증가했다'고 했을 때 훨씬 믿음이 간다. 그러다 보니 빠지는 함정이 있다. 바로 공시된 숫자를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3월 말 대부분 상장사가 사업보고서를 공시하고 2016년 실적을 발표했다. 이때 우리는 2016년 실적을 '확정해서 발표했다'는 표현을 쓴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재무제표를 검색하면 지난해까지의 재무제표와 함께 다음 연도 추정 재무제표도 함께 제시된다. 다음 연도 재무제표는 컨센서스 혹은 추정치라고 표현하고 지난 재무제표는 확정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정말 확정된 것일까? 재무제표에 적힌 숫자를 볼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회계상 숫자는 일정한 가정을 전제로 한 '추정'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정수기를 판매하는 업체가 있다. 이 회사 제품은 경쟁업체에 비해 고가에 판매되는 대신 구입 후 5년간 매월 정기검사와 함께 필터를 무상으로 교체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 회사가 제품 1대를 100만원에 팔았다면 매출액은 얼마일까? 100만원 모두를 올해의 매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회사는 필터 교체를 무상으로 해준다고 얘기하지만 그 대가는 비싼 제품가격에 이미 다 반영되어 있다. 판매가격에 제품가격뿐만 아니라 5년 동안 제공하는 무상점검과 필터 교체에 대한 대가도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제품 판매는 완료되었지만 필터 교체는 완료되지 않았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이익이 났다고 볼 수 없다. 


 만약 100만원을 모두 첫해 이익으로 잡아버리면 나머지 4년 동안은 인건비와 필터 생산비만 지출되고 적자기업으로 바뀌게 된다. 이 때문에 정수기를 판매하고 받은 100만원을 제품에 대한 대가와 5년 동안 수행할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구분해야 한다. 만약 그 비율을 5대5라고 가정하면 제품 판매 대가 50만원은 첫해에 인식하고 나머지 50만원은 5년 동안 나누어서 해마다 10만원씩 수익으로 잡게 된다. 따라서 첫해 수익은 판매 수익 50만원과 서비스 수익 10만원의 합계인 60만원이 되고, 나머지 4년은 해마다 10만원을 수익으로 잡게 된다. 이렇게 첫해 수익으로 발표된 매출 60만원은 확정된 숫자라고 볼 수 있는가?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제품과 서비스 대가를 '5대5'라고 가정한 추정이 반영되어 있다. 이렇게 '발생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회계는 모두 추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민감한 얘기를 해보자. 회사가 실적을 부풀리는 방법 중 하나로 '밀어내기 매출'이라는 것이 있다. 연말에 거래처에 가서 물건을 미리 좀 주문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당신네 어차피 내년 초에 물건 필요해서 주문할 거 아니냐? 그걸 미리 좀 주문해달라. 원래 물건 주문하면 3개월 뒤 결제하는 조건인데 지금 주문하면 결제기간을 6개월로 늘려주겠다. 그러니 어차피 대금 지급은 내년 여름에 하면 된다. 거기다 지금 주문하면 평소에 주문하던 가격에서 10% 할인해주겠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왕 내년 초에 주문할 물건이었는데 결제는 천천히 해도 되고 10% 할인까지 받을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겠다. 이렇게 밀어내는 매출이 분식이나 속임수에 해당할까? 만약 이것을 분식이라고 한다면 백화점이나 유통업체가 하는 '연말세일'은 어떨까? '밀어내기'와 백화점 '연말세일'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당신이라면 이를 '매출액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기업에서 '연말실적'을 올리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중에는 비정상에 가까운 '실적 부풀리기'도 있지만 상당수는 '정상적인 판촉활동'에 해당한다. 무 자르듯 구분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사 매출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통해 늘어났는지 아니면 이렇게 일시적으로 미래의 매출을 희생해서 당겨온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가정과 추정에 의존하는 재무제표는 분명 회사 의도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그렇기 때문에 재무제표는 믿을 수 없어. 재무제표를 보고 투자하면 망해'라고 하는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렇기에 더욱 재무제표를 잘 살펴야 한다. 결과만 살필 게 아니라 주석을 통해 이 숫자가 어떤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가정이나 전제에 변화가 생겨나지 않았는지 숫자 사이 균형을 살펴야 한다. 밀어내기 매출을 하면 재무제표상 균형이 깨진다. 할인율을 높이다 보니 회사 이익률은 낮아지며 결제기간을 늘려주다 보니 재고자산은 줄어드는 대신 매출채권은 증가하게 되어 있다. 회전율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겨난다. 이 때문에 재무제표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생겨난다. 업계 평균이나 경쟁업체와 비교해서 회사가 정말 업계 관행을 따른 것인지, 아니면 혼자서 독특한 회계처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숫자 사이 행간을 읽으려면 비재무적인 부분과의 결합이 필요하다. 숫자는 확정적이 아니라 유동적이다. 이 유동적인 숫자를 조정할 의도가 없는지 숫자 밖의 배경을 살필 필요가 있다. 바이오기업의 회계처리와 재무제표가 논란이 되는 배경에는 신약을 개발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함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있다. 논란이 되는 기업들은 바이오기업이라는 공통점 말고도 자금조달을 앞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위에서 예시한 정수기업체가 첫해 이익을 늘리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의 대가를 '5대5'가 아닌 '7대3'이라고 주장한다면 첫해 이익은 증가하겠지만 나머지 4년간 이익은 감소하게 된다. 숫자를 확정적이라고 전제하면 불신 혹은 맹신의 대상이 되기 쉽다. 숫자가 유동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그 사이의 균형과 조정을 살필 수 있게 된다. 

Posted by 김흥국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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